
피아노 전공생이라면 한 번쯤 “너만의 색깔이 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말은 때로는 막연하고, 때로는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주문처럼 다가온다. 테크닉은 충분한데 어딘가 비슷하게 들리고, 해석은 충실한데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평가 앞에서 전공생은 깊은 혼란을 겪는다. 이 글은 피아노 전공생이 자신만의 연주 색깔을 찾는 과정을 이상화하지 않고, 실제로 거쳐 가는 시행착오와 내적 변화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왜 처음에는 남을 닮을 수밖에 없는지, 언제부터 ‘내 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는지, 그리고 그 색깔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현실적인 시선으로 정리한다. 연주 색깔을 고민하고 있는 전공생들에게 조급함 대신 방향을 전하는 글이다.
서론: 연주 색깔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피아노 전공생에게 ‘연주 색깔’이라는 말은 막연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테크닉과 악보 해석처럼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력하면 바로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많은 전공생들은 자신에게 색깔이 없다고 느끼며 조급해진다. 하지만 사실 연주 색깔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순간 갑자기 생겨나는 재능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이는 선택의 결과에 가깝다. 처음 음악을 배울 때 전공생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닮는다. 좋아하는 연주자, 존경하는 교수, 혹은 가장 많이 들은 음반의 소리가 손에 배어든다. 이 과정은 피할 수 없고, 오히려 필요하다. 문제는 이 단계를 지나지 못한 채, 흉내 내는 것 자체를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할 때 생긴다. 색깔을 찾는 과정은 남을 닮는 데서 출발해, 그 닮음을 하나씩 벗겨내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피아노 전공생이 연주 색깔을 찾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짚어보며, 왜 지금의 혼란이 잘못된 상태가 아닌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본론: 색깔은 흉내와 의심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피아노 전공생이 자신의 연주 색깔을 찾는 첫 단계는 ‘의식적인 흉내’다. 단순히 듣고 따라 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연주가 그렇게 들리는지를 분석하며 모방하는 과정이다. 터치의 깊이, 페달의 타이밍, 프레이즈의 호흡을 하나씩 해체해보는 이 시기는 연주자의 어휘를 확장하는 시간이다. 이 단계에서 많은 전공생들은 오히려 연주가 더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흉내는 한계에 부딪힌다. 아무리 잘 따라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순간이 찾아오고, 연주는 점점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때 전공생은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왜 이 소리를 선택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연주 색깔의 시작점이다. 더 이상 정답처럼 보이는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연주 색깔은 단번에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연주는 잠시 불안정해지고, 평가도 엇갈린다. 하지만 이 흔들림은 나쁜 신호가 아니다. 남의 언어를 빌려 말하던 단계에서, 자신의 언어를 더듬기 시작했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시기를 지나야만, 전공생의 소리는 조금씩 다른 결을 갖기 시작한다.
결론: 연주 색깔은 선택의 누적이다
피아노 전공생의 연주 색깔은 특별한 재능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수많은 선택의 누적이다. 어떤 소리를 더 중요하게 들을지, 어떤 긴장을 허용할지, 어떤 순간에 숨을 쉴지에 대한 선택들이 모여 하나의 색을 만든다. 이 선택들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으며,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자신만의 색깔을 찾았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그 색은 계속 변한다. 연주자가 성장하고, 삶의 경험이 달라지면서 소리 역시 함께 변해간다. 중요한 것은 ‘완성된 색깔’을 갖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연주자가 되는 것이다. 피아노 전공생이 연주 색깔을 고민하고 있다면, 지금의 혼란은 잘못된 길이 아니라 필수적인 과정일 수 있다. 흉내를 지나 의심에 도달했고, 이제는 자신의 소리를 선택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소리는 화려하지 않을지라도, 분명히 ‘나의 것’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