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노 전공생이 어느 정도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후배를 바라보는 시선은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에 마음이 쓰이면서도, 막상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열심히 해라”, “지금이 제일 중요하다” 같은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피아노 전공생이 후배에게 정말 해주고 싶지만 쉽게 말로 옮기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정리한다. 연습, 레슨, 콩쿠르, 진로 앞에서 후배들이 겪게 될 혼란을 미화하지 않고, 지나온 사람의 시선으로 조심스럽게 풀어낸다. 정답을 알려주기보다는,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음악의 길이 외롭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서론: 후배를 보면, 예전의 내가 먼저 떠오른다
피아노 전공생이 어느 순간부터 후배를 의식하게 되는 때가 있다. 연습실 복도에서 마주친 낯선 얼굴, 레슨을 기다리며 악보를 넘기는 조심스러운 손짓, 그리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긴장하는 태도에서 예전의 자신이 겹쳐 보인다. 그 시절의 나는 모든 것이 중요해 보였고, 모든 선택이 미래를 결정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지나치게 무거웠다. 후배에게 말을 건네려다 멈추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겪고 있는 불안과 조급함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그리고 그 감정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괜히 가벼운 위로를 건넸다가 오히려 더 외롭게 만들지는 않을지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이 글은 조언보다는, 지나온 사람의 기록에 가깝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해줬다면 좋았을 이야기들이다.
본론: 후배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몇 가지 현실
첫 번째로 해주고 싶은 말은, 지금 느끼는 불안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피아노 전공을 선택했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 속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평가받는 삶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그러니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더 드물다. 연습이 잘 안 되는 날, 괜히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날이 반복되어도 그것이 곧 재능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는, 비교는 피할 수 없지만 전부 믿지는 말라는 것이다. 더 잘 치는 사람은 언제나 있고, 그 사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분명해진다. 문제는 그 비교가 연습의 방향을 잡아주느냐, 아니면 자신을 무너뜨리느냐다. 타인의 속도와 나의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음악은 금세 숨 막히는 일이 된다.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음악 말고도 자신을 지탱해주는 무언가를 꼭 남겨두라는 것이다. 전부를 음악에만 걸어두면, 음악이 흔들릴 때 함께 무너진다. 친구, 산책, 글쓰기, 혹은 아무 의미 없는 취미라도 괜찮다. 그것들은 연습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음악을 오래 붙잡게 해주는 안전장치가 된다.
결론: 잘하라는 말보다, 끝까지 혼자가 아니길 바란다
피아노 전공생이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사실 단순하다. 더 잘 치라는 말도, 더 버티라는 말도 아니다. 그저 이 길이 생각보다 외롭고, 그래서 가끔은 힘들어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음악은 끝까지 혼자 해야 하는 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무대 위에서는 결국 혼자고, 연습실에서도 대부분 혼자다. 하지만 그 길을 걷는 사람이 혼자뿐은 아니다. 비슷한 고민을 했고, 비슷하게 흔들렸던 사람들이 분명히 앞과 옆에 존재한다. 후배가 지금의 불안 속에서도 음악을 계속 붙잡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잘 가고 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 또 다른 후배를 보며 같은 마음이 들게 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지금의 이 시간을 조금은 다르게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조언이 아니라, 조용한 동행의 말로 남고 싶다.